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0. 알랭 드 보통 - <여행의 기술>.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 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읽을 수록 작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방대한 지식 - 예술, 문학, 그런 모든 것에 대한 지식 - 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지 않나 싶다. 독서의 의미란 무엇일까 여전히 고민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찾는 것도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1.
"아침 잠을 깨자 강렬한 무기력이 밀려왔다. 바깥에는 마드리드라고 부르는 다채로운 현상이 기다리며, 그 곳에는 흥미진진한 것들이 널려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 자신의 게으름과 좀 더 정상적인 관광객들이 느꼈을 진지함을 비교하며 냉담과 자기혐오가 뒤섞인 느낌에 시달리기만 했다.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있고 싶은 욕구, 가능하다면 얼른 비행기에 올라타 집에 가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푸에르타 델 솔은 별 특색 없는 반원형의 교차점으로 한가운데 카를로스 3세가 말 위에 앉아있었다. 화창한 날이었다. 관광객들이 그 앞에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거나 안내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강한 불안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해야 하나?"

이런 책을 쓰는 사람, 일상의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독특하게 생각해내는 그런 사람도 여행지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점이 어찌나 반가운지. 그런 고민에서도 이유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그런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한 것 같다.

#2.
"안내 책자에 쓰여있는 설명은 그 곳을 찾는 사람에게 그 평가에 부응할 만한 태도를 보이라고 압력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 였다. 나는 별 3개짜리 모나스테리오 데 라스 데스칼자스 레 알레스에 들어가기 오래 전부터 나의 반응이 다음과 같은 공식적 평가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 벽화로 장식된 웅장한 계단은 위층 수도원 회랑으로 통하는데, 이 곳의 예배당들은 뒤로 갈수록 화려해진다." 그 다음에는 이런 구절이 붙어 있는 느낌이다.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여행자는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여행의 위험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

여행지에서는 "여러가지를 계속해서 보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안내 책자에 써있는 다양한 여행지에 가보더라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끼기 어렵다. 그저 갔다 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아무 생각없이 가는 곳이 더 많다. 사실은 각각이 우연히 비슷한 곳에 위치해있다는 것뿐, 무언갈 얻어가려면 각기 다른 호기심과 자질이 필요하다. 소나무 숲,  드립 커피, 해변가, 허난설헌 생가터. 각각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있으려면 이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어야한다. 인생을 관통하는 크고 작은 질문을 갖고 있는 것, 세상에 대한 호기심. 그게 여행의 동기이기 때문이다. 

#3.
"시인 워즈워스는 도시가 생명을 파괴하는 여러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비난했다. 우리 지위에 대한 불안, 성공에 대한 질투, 낯선 사람 앞에서 빛을 발하고 싶은 욕망. 도시 거주자들은 뚜렷한 관점이 없다. 그들은 먹고 살기 편해도 자신에게 진정으로 부족하지도 않고 또 자신의 행복을 좌우하지도 않는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런 혼잡하고 불안한 곳에서는 다른 사람과 진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혼잡한 서울보다 훨씬 덜 도시적인 강릉에 와서도 이 문단이 꾸짖는 그런 삶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뚜렷한 관점없이 살고 있고 여전히 문득문득 불안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객관적'으로 유용한지 고민한다. 

#4. 
"원래의 모습에는 감탄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닮게 그린 그림에는 감탄하니, 그림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 파스칼 <팡세>

하지만 예술이란 간결함, 요약, 선택에서 오는 것 아니던가. 실제로 보는 것보다 예술가의 자의에 의해 선택되는 모습에 더 감명 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문학작품이 흥미진진한 것은 일상 생활의 지리한 일은 빼고 의미 있는 일만 적기 때문이니까.

"자연 가운데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무한하다! 따라서 화가는 자연 가운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 니체

#5.
"러스킨의 생각에 따르면, 데생이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 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었다."
보는 것.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는" 것. 예전에 그림 그리기에 관해서 샀던 책, 얼마전에 읽은 사진의 기술이란 책 모두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사람에게는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기쁨은 결코 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풍경의 진정한 소유는 그 요소들을 살피고 그 구조를 이해하고저 하는 의식적 노력에 달려있다. 우리는 눈만 뜨면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나, 그러나 이 아름다움이 기억 속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의도적으로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름다움이가 핵심 가치인 것들, 멋진 풍경이나 좋은 책, 예술 작품을 보고나서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요즘 고민이 많았다. 과연 내가 관찰을 열심히 했는가. 책은 해치워버리려는 속도로 읽고 여행지는 갔다 왔다는 것에만 의미를 두듯 빠르게 지나쳐간다.

"이런 관찰에서 우리는 취향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도 생기고, 마음에 드는 것들에 대한 일반화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러스킨은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라고 권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한다고, "말로 그려야" 한다고 했다

"이 호수에서 매력적인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거기서 연상되는 것은 무엇인가? 크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을까?"